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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TOR NIKIFOR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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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I KATSUKI 

  Valentineday kiss  ​

 

 그랑프리 시리즈가 끝난 후, 정신없는 신년을 맞이해야 했다. 그랑프리가 끝났더라도 시즌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기 때문이었고, 카츠키도 거점을 러시아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그것보다 큰 사건이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빅토르의 복귀 소식이었다. 어쩌면 유리 프리세츠키의 금메달 소식보다 더 크게 주목받았을지도 모른다.
휴식 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빅토르는 파이널 이후에 열린 몇몇 대회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웠다. 오히려 표현력이 더 풍부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건 조금 이상한 말인데, 미나코 선생님이 빅토르를 보며 「사랑연기가 좀 더 풋풋해졌어.」라고 말했어요."

카츠키가 맥커친의 털을 쓸어내리며 문득 말했다. 빅토르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얼굴 근육이 예쁜 곡선을 그리며 웃었다.

"그 사람, 날카로운 부분이 있단 말이야."

무슨 말이냐고 되물어도 빅토르는 비밀에 붙였다. 카츠키는 그런 빅토르를 흘겨 보았다. 최근에 숨기는 것이 너무 많아서 속이 상하기 시작했다. 연기도, 일상도, 감정에도 카츠키에게 비밀로 붙이는 것이 너무 많아졌다. 그러나 집요하게 추궁하면 또 순순히 말해준다는 것이 카츠키를 무시하는 듯해서 그리 기분 좋진 않았다. 예전의 빅토르가 좀 더 생각이 단순해서 좋았는데 말이다. 최근에는 조금 살이 빠진 것일까 아니면 운동을 한 탓에 근육이 붙은 것인가, 키가 더 커보인달까 나이가 들어보인달까 알 수 없지만 빅토르가 좀 더 어른스럽게 보인다. 늙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좀 더 다른 표현으로...

'어른의 색기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털이 꽉 쥐어진 탓에 맥커친이 놀란 듯이 벌떡 일어나 거실 구석으로 도망갔다. "아, 미안해!" 카츠키가 손짓으로 오라고 부르자 순순히 돌아왔고 카츠키는 쥔 부분을 다정하게 쓸었다. 이상한 생각을 한 탓에 얼굴이 붉어졌다.


러시아 사람들은 다소 무덤덤한 부분이 있어서, 기념일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다. 소소한 기념일에 기업 마케팅이 좌우되는 일본에서 자란 탓에 그 문화에 익숙한 카츠키는 발렌타인데이라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것도 밀라라는 링크메이트가, 유리에게 장난으로 "피로시키 안에 초코를 가득 채워줄까?"라고 장난친 탓에 기억난 것이었다. 어쩐지 가끔 지나는 상가 가게들이 눈에 띄는 곳에 과자를 유독 많이 진열하기 시작했다 싶었다. 

'발렌타인이라,'

안경을 벗어 내려놓고 유리와 함께 얼음 위로 올라왔다. 오늘따라 프리레그가 깔끔하지 못하다고 많이 혼났다. 

 

 


진짜 러시아의 찬바람은 이제 2월로 끝일 것이다. 그럼에도 1월의 한기를 품은 듯 카츠키의 손을 시리도록 때리고 있었다. 손바닥을 맞대며 문지르다, 거칠어진 손바닥에 단단한 반지가 느껴졌다. 카츠키는 가만히 금색의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시린 다리를 뻗어 구두로 감싼 뒤꿈치로 바닥을 차는 어린 아이 장난질을 해보아도 별로 머릿속에 무언가가 지워지지 않았다. 옆에서 유리가 뭐라고 말을 걸어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등을 발로 차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카츠동 주제에."

뻐근할 정도로 세게 맞은 등을 쓸어내리고 유리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나서야 눈에 들어왔는데 유리의 손에 든 초콜렛 브랜드 가방이었다.

"팬에게 받은 거야?"

유리는 움찔하더니 다 들켰으면서 이상하게도 쇼핑백을 언뜻 몸 뒤로 숨겼다.

"내가 겨우 이정도만 받았을 거 같아?"
"하긴 유리 엔젤스라면 산처럼 쌓아줬겠지."
"당연하지. 보육원에서 얼마나 좋아했는데."

아마 근처 보육원에 기부한 모양이었다. 유리는 늘 생각하지만 언행은 다소 삐뚠 부분이 있지만 심성은 선한 사람이다. 그러나, 언행이 삐뚤다는 걸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슴츠레한 눈과 표정으로 지금처럼 심술맞은 말을 막 한다.

"넌 빅토르한테 초콜렛 줘야하지 않냐?"

등에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빅토르는 그러지 않아도 아마 집에 쌓여 있을껄?" 라고 흘려버렸다. 유리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표정을 찌푸렸다.

"애인한테 받는 거랑 같냐."
"빅토르는 생일 같은 거도 신경 안 쓰던데..?"

유리는 무언가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무릎 뒤를 발로 차였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덧붙여 "애처럼 굴지 마." 라는 말도 들었다. 티가 난 모양이었다. 한동안 만나지 못해서 기분이 좋지 못했다. 그래도 유리한테 어린애라는 말을 듣기까지 하니까 충격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서로가 미어지는 느낌으로 그리웠지만, 지금은 자존심과 욕심 한가닥이 오묘하게 섞여버렸다. 괜히 쉽게 토라져 버렸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혹시, 하는 생각에 손바닥만한 크기의 초콜렛을 하나 구매했다. 코드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였다.

초콜렛을 사자마자 유리와 그대로 길이 갈라졌다. 헤어지고 주위가 빈 거리에 혼자 서있는 느낌이 뭔가 허전했다. 옆에 좀 더 따뜻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예전의 러시아 대회 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때도 잠시 떨어져 있는데, 정말 말도 안되게 외로웠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적은 처음이라 사실 프리 결과가 어떻게 되든 좋다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았다. 계속 빅토르 생각에 머리가 가득 찼었고 지금도 그와 비슷했다.

길을 가던 중간에 금속 구조물에 카츠키의 모습이 비춰졌다. 코와 뺨이 어느새 붉었고 머리카락은 정전기로 떠있었다.

'왜 하필 이럴 때.'

손바닥으로 누르다가 되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어느새 달리고 있었다. 구두 끝이 쉴 세없이 바닥을 쓸어 밀다가 드디어 멈춰선다. 카츠키는 숨을 잠시 고른다. 괜히 귀가 간지러웠다. 현관문 앞에서 호흡이 안정되기만을 기다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침착해지고 싶고, 왜 이렇게 침착할 수 없는 걸까.


현관에서 카츠키를 맞이한 건 역시 맥커친이 더 빨랐다. 빅토르는 소파에 긴 다리를 걸친 채로 지친 듯이 늘어져 있었다. 옷은 아직 외출복 그대로였다. 카츠키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오늘도 여러 기자 회견장에 끌려 다녔어... 너무 지쳐. 며칠 째인거야~."

빅토르 특유의 늘어진 말투를 무시하며 카츠키는 단호하게 "그래도 옷 갈아 입으세요." 라고 말했다. 빅토르는 그 말에 못 이기는 듯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꾸물거리며 겉옷만 벗고 말았다. 카츠키는 겉옷을 받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 드레스룸으로 옷을 옮겼다. 하루종일 입은 그의 외투는 아직 서늘했다.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구나, 바람냄새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고 싶다는 야릇한 생각이 돌연 들어서 스스로 깜짝 놀라버렸다. 스스로 뺨을 때리며 옷은 펼쳐 걸어두었다. 오늘 카츠키는 정상이 아닌 기분이었다. 붕 뜬 기분을 감추기 힘들다.

갑자기 뒤에서 빅토르가 불렀을 때는 어깨를 들썩 움직일 만큼 크게 놀라서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미안, 놀랐어?"

오히려 사과하는 사람은 빅토르였다. 카츠키는 본능적으로 움츠린 어깨에 힘을 뺐지만 시선은 여기저기 정신이 없었다. 그런 카츠키를 아는지 모르는지 빅토르는 "자." 라는 말과 함께 손에 까만 종이 상자 하나를 쥐어주는 것이었다. 정신없던 동공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빅토르?"

그를 올려다보자 빅토르는 평소처럼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돌연 허리를 안는 바람에 어깨에 입술이 눌렸다. "화났어?" 귀에 속삭이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자 웃는 소리가 났다. 정말 맥이 빠지게 화가 단숨에 녹아버렸다. 그렇다해도 할 말은 하지 않는 건 카츠키 성미에 맞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런 애인다운 일 그만해요."
"이것 저것 생각해온 건데?"
"그랬으면서 못보는 동안 한번도 연락을 안 해요?"

차라리 예전에 우는 표정이 훨씬 나았다. 그 표정까지 보면 정말 화가 사라질 텐데, 희미하게 장난기를 띄우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럼에도 가져온 초코렛은 정말 말도 안되게 맛있었다. 카츠키가 좋아하는, 쓴 맛이 적은 부드러운 초콜렛인데 느끼함도 없었고 아무튼 체중 조절에 신경 써야 하는데 한통을 전부 먹고 싶을 정도였다.

입에서 초코를 녹이던 도중 빅토르의 눈빛이 언뜻 느껴졌다. 눈으로 '내 꺼는 없어?'라고 묻는 듯해서 그제야 생각난 것이 있었다. 손바닥을 탁 치며 카츠키도 코트 주머니에서 초콜렛을 꺼내 건네주었다. 막상 둘 다 검은 상자인데, 문득 가까이 붙여보니 다른 느낌이 강했다. 빅토르는 기쁘게 받았지만 크기면에서도 품질도 차이가 심하게 느껴졌다.

사실 빅토르가 발렌타인을 챙길 거라는 생각도 못했었다. 괜히 비싼 걸 샀다가, 발렌타인도 안 챙긴다는 말을 할까 싶어 저렴한 것으로 사온 것인데 양심에 괜스리 찔렸다.

"빅토르, 이 초콜렛 혹시 얼마예요?"

빅토르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 말을 들으니 이 패키지는 어디 백화점에서 본 기억이 언뜻 났다.

"미안해요. 좀 더 좋은 걸 사올껄."
"괜한 걸 신경쓰네, 유리."
"뭐 더 받고 싶은 거 없어요?"

안으려고 다가오는 빅토르를 정면으로 처다보니 빅토르가 잠시 몸짓을 멈췄다. 눈을 깜빡깜빡거리다가 입술을 오물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남은 초코 값은 몸으로 받을까?"

저질같은 발언이라고 뭐라고 하려는데, 빅토르가 카츠키의 어깨를 가볍게 잡더니 누르지는 않고 카츠키의 키에 맞춰서 몸을 조금 구부렸다. 얼굴을 정면에서 똑바로 마주보며 가까운 거리에서 멈췄다. 카츠키는 은연 중에 언뜻 알아들어 버렸다.

카츠키가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하얀 뺨에 손을 대자, 빅토르가 뺨을 부비듯 기대왔다. 코와 코와 스쳤다. 몰랐는데 눈을 꽉 감고 열중하던 카츠키와는 달리 빅토르는 눈을 뜬 채로 키스에 열중하는 카츠키를 관찰하듯이 보고 있었다. 서툴다는 것이 전면으로 드러난 기분이라 창피했다. 평소에 빅토르가 해주던 입맞춤이 얼마나 능한 것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빅토르에게, 키스 경험이 그 뿐이라는 걸 전부 들킬 것이 분명했다. 늘어진 혀를 빨아들이고 입 안을 혀로 쓸어도 충족감이 안 느껴졌다. 뺨이 붉어지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입술을 떼고 가까운 거리에서 투덜거리듯 말했다.

"이런 게 사례가 될 거라고는 생각 안하는데."

빅토르가 웃음을 지어서 웃는 바람이 피부에 느껴졌다.

"유리는 생각보다 나를 안 좋아하는 거 같아."

발끈 화를 내려고 했는데 빅토르가 다가와 아기 키스처럼 쪽, 소리를 크게 내더니 떨어졌다. 뺨에도 한번 키스가 붙었다가 떨어졌다.

"갑자기 잘하게 되면 화낼 거야."

사실 이 말에 든 집착을 카츠키가 완전히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카츠키의 귀에는 어감 상 투정을 부리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fin

달달한 주제와 존잘님들이 함께하는 합작에 참여해서 기뻤습니다!

부족한 실력이 부끄럽지만 열심히 썼어요.

오늘도 빅토카츠는 알콩달콩하겠지.. 라는 생각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ㅇㅁㅇ)/ 부티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 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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